민경기 경제학 박사 / (사)외국인직접투자연구센터 동향분석실장
민경기 경제학 박사 / (사)외국인직접투자연구센터 동향분석실장

[K글로벌타임스] 글로벌 경제는 지금 거대한 균열과 재편의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공급망 재편과 美·中 전략 경쟁은 기업의 투자 지도를 변경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직접투자)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맥킨지가 지난 10월 발표한 ‘The FDI shake-up’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교하게 짚어내며, FDI가 향후 10~20년 세계 산업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오늘날 FDI가 더 이상 단순한 공장 이전이나 비용절감 전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FDI는 데이터·자원·기술·인재를 둘러싼 전방위 경쟁의 핵심 수단이며, 국가 간 전략적 균형을 재구성하는 ‘산업정책의 확장판’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래산업 지형을 규정하는 FDI의 ‘조용한 전쟁’

보고서에 따르면 ‘22년 이후 발표된 全세계 그린필드 FDI의 75%가 AI 인프라·반도체·배터리·전략자원 등 미래산업에 집중됐다. 이는 팬데믹 이전 55%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 우선순위가 명확히 미래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AI와 데이터 수요 확대로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했다. 반도체 업체들은 공급망 안정과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신규 팹을 집중시키는 반면, 全세계 배터리·전기차 가치사슬은 중국 중심에서 미국·유럽·동남아 등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과거 글로벌 자본이 ’비용이 낮은 곳’을 찾았다면, 오늘날 FDI는 ’기술·안보·시장 접근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전략투자‘ 방식으로 수정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산업의 향후 방향성을 선점하기 위해 최적의 지역에 선제적으로 깃발을 세우는 모양새다.

 

글로벌 공급망의 방향을 수정하는 ‘지정학적 거리 축소’

주요 변화 중 하나는 FDI의 지정학적 거리(geopolitical distance)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맥킨지는 UN 표결 패턴을 기준으로 국가 간 지정학적 거리를 산출한 뒤, FDI의 이동 경향을 추적했는데, 지난 ‘17년 이후 ’FDI‘의 지정학적 이동 거리가 ’무역‘보다 두 배 빠르게 축소되었다고 분석했다.

지정학적 거리 축소가 시사하는 점은 명확하다. 기업이 ’비용‘보다 ’안보·정책 안정성·공급망 리스크‘를 우선 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실제 투자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선진국 기업의 對中 투자 비중은 10% → 2%로 감소한 반면, 선진국 간 FDI는 35% → 45%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일본·한국·대만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동안, 중국 기업은 유럽·중동·남미로의 진출을 강화했다. 이렇듯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투자 흐름을 규정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정치적으로 인접한 국가 간에 결속력이 강화되는 블록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수십 년간 국제 경제구조를 규정할 중대한 변곡점으로 판단된다.

 

‘메가딜의 시대’

FDI 관련한 또 하나의 특징적 변화는 메가딜(10억불 이상 투자)의 폭발적 증가이다. 현재 메가딜은 건수 기준 전체 FDI 프로젝트의 1%에 불과하나, 금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현저하게 확대된 모습이다. 맥킨지는 이러한 메가딜 증가 요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미래산업은 비용이 아니라 ‘규모와 속도’가 승부를 가르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고도화된 제조공정을 의미하는 반도체 ‘선단공정(先端工程, leading-edge process) 팹 하나 구축에 최소 100억불이 소요되며, 초대형 데이터센터나 기가팩토리도 수십억불의 초기 투자가 요구된다.

둘째, 국가 간 인센티브 경쟁이 격화되면서 투자 규모가 더욱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IRA, 유럽의 IPCEI 프로그램 등은 대규모 투자를 유인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동하고 있다.

셋째, 승자독식(winner-takes-most) 구조의 강화다.
AI·반도체·배터리처럼 초기 우위가 평생 시장 우위를 결정짓는 산업일수록 기업은 ‘질’과 ‘규모’를 동시에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메가딜은 단순한 기업 전략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정치·외교·산업정책의 결정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산업 지도가 다시 그려진다 - FDI가 만드는 새로운 패권 구도

맥킨지는 FDI가 향후 산업 생산능력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➊ 글로벌 데이터센터 용량, 최대 2배 확대, ➋ 중국 外 지역의 배터리 생산능력, 약 4배 확대, ➌ 한국·대만 外 지역의 선단공정 반도체 생산능력, 약 5배 증가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산업 중심지와 미래의 중심지가 상당 부분 상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유럽·일본·한국이 주도하는 첨단공정과 AI 인프라가 새로운 허브로 부상할 것이며, 중국 역시 역외 투자 확대를 통해 자산 기반을 다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FDI가 미래산업의 ‘지리적 배치’를 큰 폭으로 변경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FDI 변화 트렌드를 읽고, 미래를 설계할 시점

세계는 지금 거대한 산업 재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도와 규모는 20세기 제조업 재편 못지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FDI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국가가 기술 패권을 강자로 부상할지, 어떤 기업이 미래 시장을 지배할 것인지, 어떤 지역이 새로운 산업 중심지가 될지를 결정하는 ‘지도(map)’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 서 있다. ‘글로벌 FDI의 대전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세계는 새로운 산업시대를 향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국가만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K글로벌타임스] opinion@kglob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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