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라며 안도하는 협상의 끝
[K글로벌타임스] 미국이 주도한 최근의 관세 협상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식 무역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다. 실제로 미국과 베트남·영국·중국 간 협상은 ‘구체적인 약속보다는 뼈대만 합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협상 상대국들은 ‘이 정도에서 멈춰서 다행’이라는 체념 섞인 안도감으로 협상장을 빠져나왔다.
베트남 제품에 부과된 관세는 46%에서 20%로 절반 이하로 낮아졌지만, 그 대신 미국産 농산물과 LNG 수입이 조건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거래식 접근’은 본질적으로 전략적이면서도 불완전하다. 협상은 일시적 관세 인하를 사탕처럼 던져주는 대신, 미국이 원하는 수출 확대를 얻어내는 도구가 되는 듯하다.
‘미국 상품 더 많이 구매하라’는 메시지
미국은 모든 ‘관세협상’에서 일관된 목표를 드러냈다. 바로 ‘미국産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하라’는 것이다. 베트남은 미국산 제품에 대해 무관세를 약속했고, 영국도 미국산 쇠고기와 에탄올에 대한 고율 관세를 철폐했다. 이로 인한 예상되는 자국 시장 공급자들의 반발에도 불구, 미국은 이를 무시하며 수출 확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사례처럼, 미국은 중국 원자재를 활용한 환적 수출품에 40%의 고율 관세를 유지하며, ‘Made in Vietnam’을 빙자한 중국산 제품에 철저히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수출 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기술은 협상의 칼날이자 방패
기술 산업은 미국 무역정책의 핵심 지렛대이다. EU의 디지털세 부과 움직임에 미국은 날카롭게 반응했고, 캐나다는 실제로 디지털세 시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철회했다. 트럼프는 이를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라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미국은 2023년 기준 약 2,780억불의 흑자를 기록한, 세계 최대 디지털 서비스 수출국이다. 따라서 ‘기술’은 언제든 협상의 칼날이 될 수 있으며, 유럽과 캐나다는 미국의 보복 관세 회피를 위해 한발 물러섰다. ‘기술세’는 단순한 조세가 아니라,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적 도구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국제적 '힘겨루기'의 정치적·전략적 수단이 된 셈이다.
‘금융시장’은 협상의 또 다른 참가자
‘해방의 날’ 트럼프의 관세율이 발표되자, 세계 증시는 10조불의 가치를 증발시키며 미국 정부에 경고장을 날렸다. S&P500 지수는 일시적으로 약세장에 진입했고, 채권 시장도 불안정해졌다.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관세 법안의 시행을 보류했다. 지금의 ‘관세협상’은 미국과 상대국 정부만의 공간이 아닌, 시장과 투자자, 월가의 압력이 행사되는 복합 공간이 되었다.
전략일까? 혼란인가?
현재 진행되는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보여준 방식은 하나의 교훈으로 요약된다. ‘협상은 힘 있는 자가 판을 주도한다’라는 신자유주의적 현실 정치의 압축판이 되었다. 관세는 일종의 협박 수단으로, 미국 기업의 수출 확대와 경쟁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들 내부는 정교하게 계산된 ‘게임의 기술’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까?
과도한 압박과 예외 조항의 반복은 글로벌 무역 질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무역은 ‘게임’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법적 안정성이 뒷받침되는 체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K글로벌타임스] opinion@kglob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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