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글로벌타임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긴급한 외자(外資) 확보를 위해 FDI(외국인직접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단기간 내 외환보유고가 확대되었으며, FDI는 우리 경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FDI 유치 확대’라는 당연한 듯한 명제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FDI 성장세 둔화
최근 글로벌 FDI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FDI는 1990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까지 연평균 14.0% 수준으로 증가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8년부터 팬데믹 이전 2019년까지 연평균 4.3% 수준으로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2024년 1.38조불(추정)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73조불을 여전히 하회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FDI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1997년 이후 10년간 연평균 12.0% 성장하던 FDI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5.6% 성장에 머물렀다. 물론 우리나라 FDI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 전체 누적(Stock)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FDI 비중은 1997년 2.5%에서 2011년 10.8% 그리고 2023년 16.6%로 연평균 7.6%의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과 같이 무조건적인 외국자본 유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선진국형 투자 패턴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 기업의 OFDI(해외직접투자)는 꾸준히 증가해 2023년 기준 국내 유입 FDI(IFDI, 외국인직접투자)의 2.3배를 넘어섰다. 이른바 ‘자본의 순유출’이 심화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FDI가 단순히 '더 많은 투자유치'가 아닌, '어떤 종류의 투자를 유치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외화 유입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FDI가 기술이전·산업 생태계 조성·고용의 질 향상 등 실질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외국자본 자체의 ’절대량‘보다, '무엇을 위한 자본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에 있음을 의미한다.
변화하는 글로벌 FDI 환경
글로벌 FDI 트렌드도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美·中 갈등 본격화 이후, 세계는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안정성‘과 ’전략적 가치‘의 중요성이 기존의 ’경제성‘과 ’효율성‘보다 더욱 강조되는 상황이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공급망 재편을 경제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며, 반도체·배터리·의약품과 같은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경을 초월한 ‘위험 분산’보다 ‘공급망의 내재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한국이 첨단산업 및 핵심 공급망 분야에서 FDI를 유치할 때, ‘국가안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역시 FDI 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AI·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인프라와 태양광·풍력 등 녹색에너지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새로운 투자유치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은 독립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FDI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은 스마트 공장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 감축에 기여하며, 이는 친환경 FDI 유치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2025년 우리 FDI는 이러한 융합적 특성을 이해하고, 디지털 및 친환경 기술이 접목된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에 집중’해야 될 시점이다.
전략적 전환의 중요성
이러한 대내외적 변화에 기반하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경제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투자로의 ‘전략적 전환’이다. 다시 말해서 R&D 집약적이고 친환경적이며, 국내 산업 생태계와 융합가능한 투자로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기술이전·신제품 개발·고부가가치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국가 전체 혁신역량 제고를 추구하는 혁신생태계 기여형 FDI 유치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FDI가 단순한 '자본유입‘을 넘어, 기술·경영 기법· 혁신 노하우·생산성 향상 등 ’무형의 자산 이전과 확산‘에도 역점을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더불어 高임금·高안정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내 스타트업이나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파급효과(spillover effect) 극대화도 추구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 FDI는 단순한 생산시설 유치에서 벗어나,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혁신생태계 조성이 그 본질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 외화 유입·고용 창출 즉, ‘규모 중심 유치’가 주요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공급망 재편·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기술·파급효과 중심 유치’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FDI 전략적 전환의 방향
FDI의 패러다임을 양적 유치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중심 질적 유치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 혁신 및 구조조정 계획 등과 긴밀히 연계하여,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특정 유형의 FDI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맞춤형 제안을 하는 '수요자 중심의 제안형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① 핵심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디지털 헬스케어·AI·차세대 이차전지 소재·친환경차 부품 등 첨단기술 분야와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 재순환 관련 녹색산업 분야 FDI에 집중해야 한다.
② 포괄적인 투자환경 개선 및 인센티브 재편을 고려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과 규제 완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특히, 고부가가치 및 R&D 집약적 투자에 대한 전략적 지원 기준을 설정하고 대상 기업을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혁신생태계 조성 및 국내 산업과의 연계 강화도 중요하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지역 산업·기술 생태계 구축을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의 선진 기술과 경영 기법이 국내 기업에 전수될 수 있도록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우리는 이제 긴급한 외자 유치에서 벗어나, 글로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 첫걸음 중 하나는 FDI를 다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FDI의 전략적 전환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전략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양적 성장을 넘어 혁신과 생산성을 견인할 수 있는 고품질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추구할 시점이다.
[K글로벌타임스] opinion@kglob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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